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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산문 입선작 소개

명도복지관 2013-06-14 10:40:15 조회수 5,470

내가 꿈꾸는 세상

'2013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산문 입선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는 최근 근로자의 날을 맞아, ‘2013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시상식’을 개최했다.

장애인근로자문화제는 장애인근로자를 위한 유일한 예술축제로, 장애인근로자의 잠재된 문화예술 역량을 계발하고, 장애인도 근로 주체임을 알려 올바른 장애 인식 개선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난 2000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는 총 389명의 장애인근로자로부터 1033점의 작품을 접수받았으며, 부문별 심사를 거쳐 운문, 산문, 사진, 컴퓨터그래픽·동영상 부문 입상작 총 72점을 선정해 시상했다. 본지는 컴퓨터그래픽·동영상을 제외한 54점의 입상작을 분야별로 소개한다. 산문 분야 입선 수상작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

김형자(여, 36, 지체3급, 충남)

4살이 되던 해, 기억 속 어디에도 없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천형을 받았습니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 언젠가는 낳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발레리나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소아마비로 휘어진 제 다리를 보며 서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발레리나를 꿈꾸느냐며 놀리던 반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해 왔고, 아마 그때가 저 자신을 알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왜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면서 우울한 마음을 쫒아 농약을 마셨던 고교시절, 어디선가 나를 부른다는 허상을 쫒아 허우적거렸고, 죽으려면 진작에나 죽지 이 만큼이나 키워났더니 죽으려 한다는 어머니의 하염없는 눈물에 어렴풋이 다시금 살아났던 기억도 여전합니다.

이후,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이해하면서 제 미래에 대한 꿈을 조금씩 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집안 형편을 고려치 않은 제 객기였습니다.

엄청난 등록금, 게다가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끌며 강의실을 찾아다녀야 되는 어려움, 덧붙여 하숙비에 책값, 용돈 등등... 어떻게 감당하려 하느냐는 언니의 잔소리를 가슴에 담으면서, 저는 한 순간 부풀어 올랐던 제 꿈들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은 이곳저곳의 대학들을 선택해 진학을 하고, 진학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하나 둘씩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둘의 선택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고립된 한 개의 섬이었으며, 엄청난 장벽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외톨이였습니다. 정말 제가 왜 이 세상에 서 있는지,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다며 울부짖었습니다.

한 때의 시련과 절망, 좌절은 돌이켜 보니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담금질이었나 봅니다. 몸부림치며 저 자신을 미워했던 그만큼의 시련은 이제와 생각하니 세상을 보다 넓게, 보다 깊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 준 것 같아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장애인들에게 직업교육을 가르쳐 주는 장애인직업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저 보다도 훨씬 힘들게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침대에서 떨어져 다쳤는데 척수장애 판정을 받아 사람구실 못하게 되었다며 자책하던 오빠’, ‘오토바이 사고로 하체마비가 된 친구’, ‘여행 중에 다쳐 절단장애 판정을 받은 언니’, ‘청각장애를 이겨낸 후, 오히려 나쁜 말을 듣지 않아서 좋다면서 귀염둥이 노릇을 하는 동생”

정말 이런 저런 이유와 형편으로 살고 있지만, 조금의 구김살도 없이 맑고 밝게 살고 있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기 위해 애쓰면서 사는 많은 장애인들을 보면서 저는 그동안의 제 삶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유수 같다더니 딱히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렇게 직업학교를 다녔고, 거기서 습득한 기술과 열정, 삶의 진정한 목표의식을 깨우친 저는 무작정, 한 길만 보면서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드르륵~드르륵~" 미싱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내일까지 보내야하는 어느 예비부부의 한복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동안 한복 짓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제대로 잠도 못 잤고, 서투른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숱하게 혼도 났습니다. 결국 눈물과 땀으로 이룬 3년의 세월은 저 김형자의 빛나는 훈장으로 돌아왔고, 한복 기술자의 칭호를 바라보고 있자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게다가 ‘김형자 한복집’이라는 간판도 걸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뿐 아닙니다. 제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생겨났고, 그로 인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제 분신들, 어여쁜 생명들도 태어났습니다. 그 무렵 제 인생 최고의 행복들이 쏟아졌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살피고 헌신하면서, 날마다 감사함이 넘쳐났으니 말입니다.

샤워기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립니다. 물줄기 따라 하루의 피로도, 복잡한 지난 시간의 상념들도 씻겨 나갑니다. 참으로 지난한 세월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세월을 건너 왔는지 꿈만 같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선택의 길로 갈 수 있었던 제 어리석음이 지금 생각해 보니 아찔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 네 바퀴의 움직임에 의존하며 살고 있지만, 결코 저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있어 이 세상도, 우주도, 삼라만상도 펼쳐진다고 생각하렵니다. 그래요, 한번 살펴보세요. 커다란 두 바퀴가 굴러가는 휠체어도 자세히 보면 앞을 지탱해 주는 작은 바퀴가 두 개 더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보이지 않는 작은 바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충남여성장애인연대에 모였습니다.

"당신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한발 앞당길 수 있습니다." 충남여성장애인연대 홈페이지 문구를 떠올려 봅니다. 아무리 되놰도 예쁜 말입니다. 여성장애인들의 잠재된 기술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취업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재활프로그램들, 여성장애인으로서 억압되었던 것들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다양한 소통을 배울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사업들, 여성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 내의 여러 가지 이슈를 찾아내는 기자학교,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하며 취미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자조모임 등을 통해 우리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자랑하려고 합니다.

깔끔한 정장에 반듯한 느낌을 주는 그녀는, 스피치교육을 받은 뒤 평범한 주부에서 일약 잘 나가는 유명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오는 단어는 내 심장을 멈추게 했고, 몸짓 하나하나는 내 심장을 다시 쿵쾅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러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그녀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는 생각에 강의에 매달렸고,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그를 닮아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결과 많이 ‘스피치소통 전문교육사3급’이라는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멜로디 소리와 더불어 제 목소리를 듣는 지휘자님은 오늘도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주여~”를 연신 외칩니다. 부족함 많은 제 목소리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게 도와달라는 외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연습하기를 몇 달, 충남여성장애인연대 ‘희망나래 합창단’이 거제도 전국합창대회에서 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재능기부를 한 지휘자님은 요즘 들어서는 기쁨의 “주여~”를 외칩니다. 세계 합창대회까지 승승장구 했으면 합니다.


초록이 지쳐 조금씩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입니다. 풍성한 곡식을 거둬들이고 단단하게 여문 과일이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이 가을만큼이나 저의 내면도 풍성하게 가꿔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왼손은 계단 모서리를 잡고 오른손은 양쪽 목발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강의실로 오르고 있습니다. 제 옆으로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앞쪽에는 젊은 청년이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호서대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준비된 자는 언젠가 반드시 쓰임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떡잎만큼 작은 시작이지만 이 가을만큼이나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 제게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